[다산칼럼] 정치가 키우는 한국 산업의 병

입력 2015-10-14 18:13  

단기적 성과만 중시하는 정치
시장경쟁 차단, 좀비기업만 연명
창조적 기업가정신부터 돋워야

김영봉 < 세종대 석좌교수·경제학 kimyb5492@hanmail.net >



취업준비생은 물론 비정규직 근로자, 중소기업, 자영업자 할 것 없이 가장 어려운 때를 보내고 있다. 이들의 요구는 끝없이 늘어나고 있고, 정부·정치권은 이에 대해 즉각적인 지원과 규제 도입으로 반응하고 있다. 이런 단기적 대응이 장차 공동체와 개인의 장기적 생존 능력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지, 사회의 품성과 인간관계는 어찌 형성될 것인지, 지금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은 수많은 정책적 지원과 규제로 얽힌 나라다. 중소기업, 골목상권, 동반성장 등에 정치권의 관심이 유별나고, 따라서 약자(弱者)라면 모두 보쌈하듯 수많은 지원과 규제로 얽고 있다. 중소기업 정책금융의 비중은 독일 0.99%, 미국 0.45%, 영국 0.33%에 비해 한국은 7.33%다. 이런 정부지원은 과연 산업현장에서 얼마나 중소업체 경쟁력에 기여하는 것인가.

《1인 제조》의 저자 유재형 씨는 이렇게 말한다. “창업지원, 투자보육지원, 글로벌사업 확대지원, 재창업지원, 투자·융자 연계지원, 신기술 개발지원, 선도茱鄕熾?등 무수한 자금들이 중소기업을 유혹한다. 담보가 없어도 되고, 갚을 필요도 없고, 성공해도 성공보수만 지급하면 되는 개발지원 사업자금도 있다. 그러나 결코 싸지 않은 돈이다. 왜냐? 눈먼 돈에 한 번 맛들이면 이런 돈만 찾아다니게 된다. 힘들여 제품을 생산하고 어렵게 팔아 돈을 벌기보다 눈먼 돈 받기가 훨씬 쉽고 편하다. 이에 익숙해지면 어느 순간 제대로 된 제품이 나오지 않고, 고객보다 지원자금만 바라보게 된다. 인력이 적은 기업일수록 본업은 하지 못하고 지원 사업에 거의 100% 매달려야 한다. 대부분의 지원과업들이 정책적 또는 정치적으로 결정되기 때문에 시장에서 필요한 기술과 괴리될 수 있다.”

유씨는 자기 홀로 기업을 6년간 운영했으며 그 경험을 영세창업 희망자들에게 알리려고 저술했다고 한다. 그는 외국계 벤처캐피털에서 일하다가 창업했으나 2009년 도산 위기에 처해 큰 빚을 안게 됐고 직원은 하나둘 다 떠났다. 이후 무선주파수 부품업체를 홀로 운영해 현재 빚을 모두 갚고 가정도 꾸리게 됐다고 한다. 어떤 특정한 사람의 ‘1인 기업’ 경험을 중소기업 전반에 일반화할 수는 없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한국 산업에 이런 문제가 있음에 공감할 것이다.

유씨는 “고객으로부터의 돈은 어떻게든 다 받아내고 협력업체에 나가야 할 돈은 어떻게든 틀어막으면 잠시야 돈을 벌지 모르지만 결국에는 내 돈도 말라버린다. 실상 내게 돈 주는 사람은 고객이 아니라 협력업체다. 제품이 없으면 고객이 내게 돈 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돈을 막으면 돈을 벌 수 없다”고 털어놓는다. “터야만 버는 것이다. 협력업체에 ぐ?돈은 제대로 줘라. 아르바이트비 생수비 토너비 임대료 전기료 지급도 철저히 날짜를 지켜라. 거래는 물리고 물리는 것이라서 내가 협력업체에 하루 늦게 지급하면 그의 협력업체는 이틀 늦게, 그 다음의 협력업체는 사나흘 늦게 지급하게 된다. 이것이 반복되면 나의 거래사슬엔 피로감과 불신이 누적되고 언젠가 반드시 내 품질에 영향을 미침으로써 고객도 잃고 자금도 마르는 결과를 초래한다.”

오늘날 우리 산업정책의 문제는 기업의 건전한 생장(生長)보다 단기적 정치적 효과에 주목한다는 것이다. 중소기업·영세사업체 시책은 대개가 구제·시혜제도가 돼 ‘좀비기업’을 연명시키고 경쟁으로 살아남으려는 기업의 발목을 잡는 역할을 한다. 상생·동반성장 시책들은 시장을 이리저리 칸막이로 막고 타(他)의 희생을 요구함으로써 대기업 중소기업을 서로 충돌시키고 기업의 상호소통, 협력과 성장을 방해하게 한다.

이런 산업 환경에서는 소위 창조·혁신·기업가 정신은 생장할 수 없다. 국민은 타인의 무한한 희생에서 자신의 이익을 찾으려는 비생산적, 기생(寄生)적 성향에 젖게 된다. 이는 모두 국민을 위한다는 정치가 만든 병(病)인 것이다.

김영봉 < 세종대 석좌교수·경제학 kimyb5492@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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